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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내 흰 바람벽,

또 이사를 했다. 인생을 쭉 놓고 본다면 초년쯤 되겠지만, 나는 지금 인생의 중반을 넘어가는 느낌이다. 어쨌든, 어쩌다가 이사복이 터졌다. 이번이 몇번째 짐을 싸는 것인지. 저번까지는 얼추 몇번이다 생각도 났었는데, 지금은 손가락 하나하나 접어보는 것도 귀찮다. 이번해만 두번의 이삿짐 트럭을 불렀다. 한번은 먼 곳에서 돌아왔고, 또 한번은 가깝지만 멀리 떠나왔다. 적응한 것보다 적응할 게 더 많은 이곳에서 나는 얼마나 여기에 있을까를 생각한다. 더운 여름이지만, 게다가 더위로는 유명한 곳에 살지만 에어컨도 없이, 더군다나 선풍기도 켜지 않고 살고 있다. 바람이 세다. 덕분에 집 밖에 나가지 않으면 하루 샤워 두번정도로 더위를 이길 수 있다. 태어나 이렇게 높은 곳에 살거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장을 보고 돌아왔다. 두팔 가.. 더보기
어쩌면, 8월의 크리스마스. 무어라 많이 적으려다. 결국엔 다 적지 못할 것 같아서. 소중해서 너무 아껴서 작은 박스에 이 편지 한통만 간직하고 있다고. 그때도 지금도. 그 말이 너무 감동이라고. "전화도 하지 말고 와" 더보기
그런 밤. 둘이 모두 행복하고 좋은 결정을 내리는 것이 가장 행복한 방법이겠지만. 짧은 시간 안에 그런 방법을 찾지는 못했다. 이 마음. 이게 뭘까. 텅텅 빈 방에 혼자 앉아 많은 소음 속에 가만히 그렇게 앉아 있다가 왈칵 토해내고 싶은 것이 나인지. 그대인지. 그것도 모르겠다. 열려있어야 하는 여름보다 안으로 웅크리는 겨울이 좋은 건 조금 더 조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적고 싶던 마음은. 이번 선택은 내가 조금 외로운 선택을 한 거라고. 더운 여름 속에서 나는 내 지난 겨울처럼 외로울 거라는 생각이 지나간다. 가만히 나이고 싶다. 온전히 나 하나만 생각하고 싶다. 더운 여름에 한 가운데서. 돌아서고 싶다. 더보기
갑자기 조카가 내 이름을 외운 건 일년 전 봄이었다. 병원에 붙여져 있던 메모를 보더니 고 쪼고만 입으로 이름 한번 웅얼 내 얼굴 한번 이름 한번 웅얼 내 얼굴 한번 앞으로 너에게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 우리를 이해하는데까지. 또 한번은 무엇이 헷갈렸는지 이모! 하고 부른다. 그러더니 아니 고모!하고 부르다이모고모! 고모이모!하고 부른다. 무엇이 어떠냐 싶어 왜왜 자꾸 불러 꼬맹이! 하고 볼을 쓰다듬으니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든다. 갑자기 .. 그 작던 아이가 . 겨우 전화 수화기에 대고 웅얼웅얼 하던 아이가. 곧잘 말하고 장난치고 또박또박 이름을 말하고 인사를 하는 게 신기해서. 내 이름을 말하던 꼬맹이가 생각이 나서 적는다. 좀 더 크고. 인사도 안하고 꿈벅인사만 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사춘기 꼬맹이.. 더보기
이렇게 적어도 기억이 나지 않는. ┌ 나의 이 글은 그의 유년의 세계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하는 결함을 갖는다. 그리고 그의 무전망(無展望)한 비극적 세계관이 그의 문체와 결합되는 부분을 역시 들여다보지 못하는 결함을 갖는다. 나는 다른 사람이 그 일을 해주었으면 한다. 나는 기형도가 죽은 새벽의 심야극장. 그 비인간화된 캄캄한 도시 공간을 생각하고 있다. 그가 선택한 죽음의 장소는 나를 늘 진저리치게 만든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러할 것이다. 그의 검은 눈썹과 노래 잘하던 아름다운 목청이 흙 속에서 이제 썩고 있는 모습도 지금 내 눈에 보인다. 형도야, 네가 나보다 먼저 가서 내 선배가 되었구나. 하기야 먼저 가고 나중 가는 것이 무슨 큰 대수랴. 기왕지사 그렇게 되었으니 뒤돌아보지 말고 가거라. 너의 관을 붙들고 "이놈아 거긴 왜 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