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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내 흰 바람벽,

가을이 오면 석류꽃 피겠지. 마실을 다녀온 엄마가 말했다. 석류나무를 가져왔다고. 이번 가을이 되면 석류를 먹을 수 있으냐고 물으니, 엄마가 답했다. 나무가 땅에 뿌리를 내릴 시간이 필요하니, 이번해는 기대하지 말라고. 그래도 석류꽃이 필때를 벌써부터 기다리고 있다. 흙과 함께 삶을 꾸려 가는 사람들에겐 기다림이 낙이 아닐까 싶어졌다. 엄마는 오랜만에 텃밭일을 했다. 비닐도 씌우고 감자도 심었다. 그 곁에 오랜만에 나도 있었다. 비 내린 다음날 차게 부는 바람이 좋았다. 봄이면 내가 좋아하는 연분홍빛 살구꽃이 피겠다. 이렇게 봄이 오는구나. 오늘 지나가는 생각으로 농사나 지으며 살아볼까 하는 생각을 하다 그럴 자신이나 있나 싶어 피식 웃었다. 결정되지 않은 많은 것들을 두고 엄마는 석류 나무를 심었고, 나는 이곳의 가을을 기다린다... 더보기
너와 내가 떠난 이 알 수 없는 여행길 처음 닿는 길에서도 한 사람을, 별을 보면서 당신을 생각했다. 그 사람이 못 와 본 길을 내가 가고 있다. 그러니까. 또 왈칵 울고 싶어졌다. 운다고 한 사람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운다고 해결해야할 것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한번씩 아무것도 아닌, 별이 반짝이는 것에, 파도가 치는 것에, 김 서린 안경 속으로 눈물이 들어찬다. 하지만 아직도 모든 감정들이 정확하게 느껴지지 않고, 느끼고 싶지 않아 고개를 돌린다. 하고 싶은 말은 두고, 아직도 정리 되지 않은 내 마음도 지금 여기에 두고, 더보기
어쩌면 지금은. 아무것도 허락되지 않은 시간. 더보기
달하노피곰도다샤 달님. 높이 높이 떠서 한 사람 가는 길. 어둡지 않고 외롭지 않게 밝게 비춰주오. 일주일이면 어느 정도 정리되기에 충분한 시간인가. 이렇게 누워 조금 담담히 이야기할수도 있다. 매번 생각해보고 그려봐도 정확히 그려지지 않던 순간이 바람처럼 파도처럼 지나갔다. 참으로 순식간에. 잘 지나오고 있다. 어쩌면 잘 지나온지도 모르겠다. 더 지나고 날이 한 달 두 달 더 지나고 나면 좀 더 뚜렷하게 알 수 있겠지. 사실은 그 한 달 두 달 뒤의 시간이 두려워서 무엇이든 정신없이 웃고 떠드는것이다. 위로가 필요하다기 보다 지금 당장 마음을 메울 것들이 필요한 것이다. 시간은 나를 어디로든 데려다 줄 것이니. 그 시간에 모든 걸 걸어둔다. 모두 한번씩 건너는 마디를 내가 지금 건너고 있다. 그리 깊게 생각할 것이 아.. 더보기
그러니까. 그때 이후로 믿는 게 하나 생겼다. 믿는다고 해서 그게 정확한 근거나 이유가 있는 건 아니지만. 기차를 타는 일. 몇시간을 옆자리에 앉아 어딘가로 가는 일. 그걸로 이 사람이 내 사람이구나 아니구나를 점쳐본다. 신기하게도 기차를 타고 옆자리에 앉는 순간 내가 이 사람을 편하게 생각하는지 아닌지. 이 사람이 나를 편하게 생각하는지 아닌지를 안다. 많이 그래 보지 않아 잘은 모르지만 내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건 확실하다. 그 날. 나는 한 사람과 기차를 타고 어딘가로 가려고 했다. 그 날 표를 끊고 기차를 탈 때까지 나는 설레였다. 기차를 탄다는 것도 바다를 본다는 것도. 그 모든 마음이 한순간에 무너졌던 건 자리에 앉았을 때였다. 뭔가 아! 하고 느껴졌다. 불편하구나. 낯설구나. 이게 시간이 지난다 해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