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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내 흰 바람벽,

가을, 비

 

 

어제부터 내린 비가 가을비라는데, 그래서 어제 밤엔 좀 괴로웠다.

새벽에 불현듯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그것에 대해서 쓰려고, 어제 휴대폰으로 쓰다가 말았는데, 쓰려고.

비가 오니까.아직까지.

 

작년 이맘 때쯤 집에 잠깐 다녀간적이있었다.

3시간 하고 30분이 걸리는 곳, 거기다 지하철 시간을 보태면 대략 4시간의 거리는 마음처럼 쉽게 다녀가질 못해서

그 날도 맘 굳게 먹고 내려오던 참이었다.

휴가 덕분이었겠지. 몇 밤을 잤었으니까.

그 날은 더웠고, 집을 나설 때부터 짜증이 극에 달아있었다.

더위는 비 때문이었던 것 같다. 저녁에 비가 내리더니 좀 선선해 진 것 같았으니까.

 

오랜만에 친구들도 만났다. 워낙 바쁜 사람들이라 그런지, 아님 마음이 없었던 건지 한번 모이기가 어려웠는데,

그날은 얼추 다 모였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것 때문에.

이야기는 길어졌고, 사람들은 신이 났고, 그래서 조금 더, 조금 더, 하다가 11시쯤 되었을까.

집에서 전화가 왔었다. 너무 늦는 것 아니냐고, 어서 오라고, 아빠가 화가 났다고.

그럴만하지, 예전같았으면 뭐가 늦은거냐고 말했을테지만, 오랜만에 내려와서 집에 좀 더 있었으면 하는 마음을

그때는 이해가 되서 집에 가야지 하고 맘을 먹었다.

하지만 오른 분위기는 쉽게 가라앉히기 않고, 좀 미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나는 집에 가야해, 하고 말하면서

좀 더 놀다 들어가, 오랜만에 만났는데, 하고 말했던 것 같다. 진심이었다. 고작 나 때문에 분위기가 깨지는 건 싫어서.

12시도 안됐는데, 좀 더 있다가자, 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너도 더 있다가 가자, 하는 말도 있었다.

그 때 한 친구가 그랬다. 좀 더 있다 가도 돼. 다 이해하셔. 늦게 들어가다 보면 다 이해하시게 되어 있어. 하고 말했던 것

같은데, 내 기억은 내 위주니까. 선명하진 않다.

그래도 나는 가야해. 내일 아빠 생신을 좀 당겨서 밥 같이 먹기로 했어. 아침에. 하고 말했는데.

그걸 아침에 하지, 지금 하는 건 아니잖아. 하고 말했었다.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가. 혹은 기억하기 싫은 누군가가.

택시 안에서 분위기는 좀 싸했다. 무슨 말이 더 오갔겠지. 그 다음은 어렴풋이만 기억난다. 어디쯤까진.

그 말이 왜 그렇게 밉던지. 나를 기다리는 내 사람들은 그렇게 작아져도 되는지.

 

그게 마지막이었다.

같이 생일이라고 케익에 초를 켜고, 같이 맛있는 밥을 먹고, 봉투에 작은 돈을 넣어 드리던 게. 그 시간이

한 사람의 마지막 생일이었다. 조금만 더 일찍 들어가서 말이라도 좀 더 붙여볼걸하는 생각이 어제 불현듯 들었다.

새벽에. 그래서 그 말을 했던. 그 친구까지 미워져서 어제는 좀 괴로웠다.

새벽 3시가 다 된 시간에 누구한테든 말하고 싶었는데, 혼자이고 말았다. 그래, 그럴 땐 차라리 혼자인 게 낫다고.

그렇게 오늘 생각한다.

 

이 맘 때쯤이어서, 어제 생각이 났었나보다. 잊지 말라고,

오늘 일기장을 펴다가 1월의 일기장부터 어디까지 빼곡하게 적혀있던 글자들을 보면서.

나름, 나도 힘겨운 시간을 통과해 왔구나 싶었다.

어제는 거의 정리되어가는 집을 보면서 너무 일찍, 너무 급하게 도망치려고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고보면, 아직도. 아직까지는 허우적거리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매번 이제 다 괜찮아지고 있어. 라고 적지만, 여전히 어디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건 아닌지.

 

전화를 걸면서도 차라리 반대편에서 받아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결국 혼자인 게 나은 걸, 알고 있으니까.

 

긴 일기였다. 그칠 것 같던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다. 좀 쌀쌀하니,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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