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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내 흰 바람벽,

또 이사를 했다.

 

 

인생을 쭉 놓고 본다면 초년쯤 되겠지만,

나는 지금 인생의 중반을 넘어가는 느낌이다.

어쨌든, 어쩌다가 이사복이 터졌다.

이번이 몇번째 짐을 싸는 것인지. 저번까지는 얼추 몇번이다 생각도 났었는데,

지금은 손가락 하나하나 접어보는 것도 귀찮다.

 

이번해만 두번의 이삿짐 트럭을 불렀다.

한번은 먼 곳에서 돌아왔고, 또 한번은 가깝지만 멀리 떠나왔다.

적응한 것보다 적응할 게 더 많은 이곳에서 나는

얼마나 여기에 있을까를 생각한다.

 

더운 여름이지만, 게다가 더위로는 유명한 곳에 살지만

에어컨도 없이, 더군다나 선풍기도 켜지 않고 살고 있다.

바람이 세다. 덕분에 집 밖에 나가지 않으면 하루 샤워 두번정도로 더위를 이길 수 있다.

태어나 이렇게 높은 곳에 살거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장을 보고 돌아왔다.

두팔 가득, 어깨가 빠질만큼 가득 사서 돌아왔다.

근데, 냉장고에 채워진 것도 배가 고파 뭘 먹을려고 하니 먹을 것도 없다.

6만원치나 계산을 하고 왔는데, 대체 난 뭘 산거지...

 

그리고 최악의 상황은

며칠 전에 고무장갑을 샀는데, 왼쪽 밖에 없었다.

육성으로 '헐' 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오늘 나머지 한짝을 사왔는데,

'헐!' 또 왼쪽이다.

분명 오른쪽이라고 적힌 걸 샀는데, 흑.

오른쪽만 있는 사람도 있겠지. 저랑 바꿔요. 흑

 

또 하루가 간다.

사부작사부작 하나씩 하나씩 해야할 것들을 정리하다보니

또 8월이다.

 

한 사람이 떠나고 나면 슬픔보다 먼저 마주하는 것들이 해결해야할 일들이라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더라는 말,

나도 그래버렸다. 나도 기다렸다는 듯이, 이렇게나 빨리 떠나왔다.

좀 더 느긋해도 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가끔한다.

사람이 다 정리하고 다음을 맞이 할 수 있을까만,

요즘은 이렇게 불쑥불쑥 '네가 꼭 그래야했어?' 하는 질문 앞에 서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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