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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내 흰 바람벽,

답답하잖아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좀 쓸쓸하고 모두 아는 이야기겠지만 쓰고 싶어 설레였던 적 수 십번이었다. 근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몰라 백지 앞에서 점만 뚝뚝 찍는다. 너무 욕심이 많나보다 어떤 말이든 다 하고 싶어서 어떤 말도 못쓴다는 말이다. 앞과 뒤가 붙지도 않고 중간이 어딘지도 모르고 어쩔땐 어디로 흘러가고 싶은건지도 몰라서 잠들기 전에 몇 번을 돌아 눕기도 한다. 영 이쪽으로 감이 발달하지 못해서 욕심만 늘고 있는. 힘은 없고 성질만 남은 할아버지 같다. 흑. 참 가을 같은 날이라고 생각한다. 덥다곤하지만 바람이 이렇게나 불어서 나는 매일 아침 골목 걷는일이 좋다. 옷이 바람에 살랑살랑. 그 옷자락에 내 마음도 살랑살랑. 작년 9월 달력 10일 쯤 일기 첫 문장이 '아 가을이다'였다. 한달쯤이면 내.. 더보기
열두시 이분 나는 안보이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없다. 나는 뭐든 볼 수 있기 때문에. 내게 보이지 않는 것은 보기 싫어 안보는 것. 알지 못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 내리는 비의 모양. 커가는 애플민트의 자람. 아침 내리는 햇살. 어렵지만 어렴풋이라도 누군가에게 그것들이 내게 주는 설렘. 떨림. 이런 것들을 조금이나마 전할 수있다. 하지만 나는 모두 보고 있기때문에 보지 못한다 아무리 가정을 해도 그것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 나는 그래서 너에 대해 말할 수 없고 사랑의설렘과 행복 쓸쓸함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다. 결국 아무 것도 말할 수없고 쓸 수 없다. 더보기
다 거짓말 같아. 집에 돌아가 하는 일은 정해져 있다. 씻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가만히 누워서 밖에 소리를 듣는 것. 어제 조금 다른 게 있었다면 화분을 두개나 들여놓은 것, 창에 두개를 나란히 세워놓고 보니, 여태 집에 살아 있는 것이 없었구나. 나만 귀신처럼 스윽 스윽 다니고 있었구나. 말소리도 없고, 생기하나 없이. 엄마가 집으로 돌아간 후 방을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있었다. 엄마가 놓아둔 그대로 하나 손 대지 않았다. 칫솔도 그대로. 집었다 놓아둔 종이 가방도 그대로. 벗어둔 옷도 그대로. 그렇게 며칠을 살았다. 그리고 어제 싱크대 위가 허전해 뭐가 없나 생각하다가 간장도, 식초도, 올리브유도 아무것도 없어 어디있지 싶어 선반 문을 여는데 거기 다 넣어져 있다. 그때쯤에야 어렴풋이 이른 아침에 밥도 하고, .. 더보기
글쎄, 그냥 설레 구멍난 곳 찾아 쏟아 붓듯 비가 내리고. 그래도 몰아치는 빗소리가 좋아 괜히 창있는 곳에 가 서 있고 아침 걸어가는 저 길과 내가 신은 신발과 들고 있던 우산과 메고 있던 가방의 색이 좋아 기분이 좋다. 전화를 해야지. 누구든 목소리를 들어야지 하며 건 전화의 끝에 엄마가 있다. 엄마가 오겠다 하는 말이 떨어지자 마다 마음이 들떠 지나가는 누구든 붙잡고 "엄마가 온대요!"하고 말하고 싶어 혼났네. 글쎄 그렇더라니까. 괜히 히죽거리며 오늘 뭔가 기분이좋았어. 하고 끌어다 붙인다. 엄마. 나도 엄마 배에서 열달을 헤엄치고 살았지. 태어났을 때는 쪼글쪼글 그야말로 핏덩이었겠지. 엄마는 또 나를 덥석덥석 잡지도 못하고 왜 우는지 왜 웃는지 왜 짜증을 부리는지 모르고 어르고 달래면서 나를 키웠잖아. 근데 그게 다.. 더보기
제목없음 우린 곧 만나게 될거야. 아주 사소한 것들 때문에 서로 낯설어진 얼굴을 마주 하겠지. 자주 쓰던 펜이 없어진 걸 이제야 알았어. 곧 잘 꺼내쓰고 없으면 찾아서 라도 쓰던 펜인데 오늘 그걸 찾으니까 없더라. 생각을 더듬어 보니 손에 잡은지 꽤 오래도 되었더라고. 근데 없어진 줄도 모르고 지금에서야 그걸 찾겠다고 온 방을 다 뒤지고 있는거야. 도저히 못찾겠다 싶어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는데 생각났어. 그게 너한테 있구나. 꺾었던 고개를 제자리로 돌리며 생각했지. 그게 너한테 있겠구나. 잘있니 하고 허공에 안부인사도 했다. 그게 왜 너한테 있을까. 하필이면. 나만큼 너도 그 펜을 자주 썼지. 펜을 잘 가지고 다니지 않았으니까. 근데도 나보다 잘 끄적거렸고 그때마다 나는 네 옆에 있었으니까 자연스레 너에게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