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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내 흰 바람벽,

6.7 ㅡ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혼자서 살아갈 수 있을 때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친구의 말을 되새긴다.비슷하다고 생각했던 친구는 늘 나보다 어른스럽다. ㅡ더 이상 자라지말라고 가지를 쳐낸 살구나무에 꽃이 피고 살구가 가득 맺혔다, 모든 것에는 자기 나름의 생이 있다는 것. ㅡ편지를 쓰면 좋겠다, 하고 어제 밤 생각했다.여행가서 먼 나라로 보낸 편지를 받지 못했다고 했을 때아.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전해지고 싶은 순간은 이미 지났으니까. 아직 나한테 도착하지 않은 편지 몇 장쯤 있었으면 좋겠다. 더보기
5.22 시골집 은행나무는 올해도 풍성하게 은행잎 돋아났다.삼백년하고 몇 십년이 지났나.집 앞 살구 나무도 오래되었지.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장면 속에도 그 나무는 있었으니까. 미워할 거 하나 없다는 생각이 그 나무를 보면서 들었다.내 곁에 가장 오래 살다간 사람이 여든 여덟.가장 짧은 생은 몇이었나. 십년씩 손가락 하나 접으면 열손가락 채 접지도 못할텐데.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시간이 얼마나 될까 10년은 될까. 20년은 될까. 그럼 내 나이가 얼만가, 뭔가 짠해지는 초여름 밤이네. 정말 사랑만 하기도 짧은 생이네. 더보기
5.15 이따금씩 사무치게 그리워서 심장이 쿵하고 내려 앉는 일이 있다.돌아오는 계단에서, 친구와 하는 별 거 없는 대화에서.사무치다는 말이 이다지도 가깝게 느껴졌던 적이 있나 싶어서사무치다. 하고 소리내어 발음해 보기도 했다.쓰다듬을 수 없다는 거. 돌아선 뒷모습을 볼 수 없다는 거.아무리 달려도 가까워 질 수 없고. 아무리 뻗어보아도 닿을 수 없다는 거. 일찍 누운 저녁 자리에 불어오는 한기 같은.새벽인지 저녁인지 구별하기 어려워서문득 내 안에 내리는 서리 같은. 아무리 여며도 목덜미를 타고 내려오는 추위처럼뭔가 내려앉은 마음은 어디가 시작이였나. 더보기
5.7 시골 집은 점점 사람 손을 타지 않는 것을 아는지 제비는 오지 않고 나무마다 벌레들이 파고 든다. 일주일이면 늘어진 장미꽃도 꺽이고 빨랫줄 널어놓은 마른 걸레도 어디로 사라진다. 봄이면 라일락 향이 그득하고 집 뒤 담벼락에 기대듯 아카시아 꽃이 피고 제비가 처마 밑에 집을 짓는 집. 차가운 마루바닥에 누워 부채질을 하고 석류 꽃이 떨어지면 알알이 가득 찬 석류가 익는 집. 사라지지 않는 집이 있었으면 좋겠다. 더보기
4.25 - 시간. 꼬맹이도 벌써 스무살이 되었구나. 너무 오랜만이라 낯설었지만 한참 바라보았지. 올해가 지나면 한살이 더 느네요.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대도 그렇네요. 라는 노래가사도 생각났다. - 10년 전에 친구들과 함께 닫아두었던 타임캡슐을 열었다. 손가락 열개 이렇게 쉽게 접히는구나. 10년 전 사진들, 10년 전의 나와, 내게 소중한 사람들, 지금은 곁에 있지 않지만, 멀어졌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기도했다. 어디서든, 뭘 하든 행복하라고, 나는 꼭 너를 위해 기도한다고, 그때 예쁜 가족사진 하나 넣어둘걸, 너무 가깝고 너무 익숙해서 그거 넣을 걸 잊어버렸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