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기 내 흰 바람벽,

8.22



'우리 정동진에 가자'

그런 날이 있었다. 정동진에 가자고. 오늘은 기차를 타야한다고. 무작정 어디로든 떠나야한다고.
장난스럽게 시작된 문자는 점점 진지해졌고. 처리해야하는 업무들 사이사이로 나는 기차 시간을 검색하고 누군가는 들떴고. 또 누군가는 가방에 짐을 챙겼다. 어쩌면 잠시 후면 바다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올랐다.

결국 그 여행의 기대감은 기대감 속에서 사라졌고. 그 날 밤 우리 셋은 시끄러운 거리에서 잠잠하게 머물렀다.
노래를 불렀고 기름 튀는 불판 앞에서 고기도 먹고. 이제는 사라진 조용하던 술집에서 웃고 떠들었다.

그 날 정동진으로 가지 못한 건 결국 우리의 결정이었지만 조금 아깝다. 그렇게 떠나볼껄. 밥도 먹어야하고 잠자리도 정해야하고 기차표도 예매해야하고 우리가 7시에 만났으니 그때부터 역까지 가려면 1시간 반이나 걸렸어도. 지금 방금 퇴근해 너무 피곤했어도. 돈이 조금 들어도. 돌아오면 주말이 끝나도.

그래도 우린 아직 시간이 많으니까.

새벽 집으로 오면서 그랬지. 우리 아까 쓴 돈이면 정동진 두번은 갔겠다. 하고 웃었지만 모두 씁쓸했지.

갑자기 그 날일이 생각났다. 갑자기.
그리고 그 날 그 곳에 갔었으면 참 좋았겠다.
그러지 않아서 좋았을거라고 단정지어 버리는 걸 수도 있겠다.

그러고 보니. 그 때 우리의 차고 넘치던 고민은 모두 사라지고 없네. 모두 달라진 문제들. 고민들. 그런 것들이 들어찬 걸 보면 지금의 것들도 모두 넘어가게 될 것 같아.

요즘은 앞을 생각하지 않아. 언젠가부터는 지난 시간들을 생각해. 그냥 지난 것들 모두. 옛날 사진들. 옛날 글들. 옛날 문서들. 옛날 노래들. 지나온 사람들.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때가 참 행복했지. 하고 생각해. 나는 그 때의 어떤 부분을 보고 있는걸까.


확실하진 않지만 그래도 괜찮을거라는 믿음. 그 믿음은 어디서 시작된걸까. 그리고 지금 그 마음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여기 내 흰 바람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9.28  (0) 2014.09.28
9.3  (0) 2014.09.03
7.12  (0) 2014.07.12
7.11  (0) 2014.07.11
7.4  (0) 2014.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