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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 길을 걸을 때마다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내가 이렇게 꽃을 좋아했나 하고 생각했던 며칠. 겨울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각 계절마다 좋아하는 날이 하나씩은 있었다. 매번 지나는 길이 있는데 앙상한 가지만 있다가 싹을 틔우는 초록을 볼 때 나는 설랬다. 봄이 오는구나. 뭐든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활짝 핀 벚꽃나무 아래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얼굴은 환하고. 가끔 나도 행복해서 웃었다. 환하게 떠있는 벚꽃 아래를 걸었다. 낮이든 밤이든 그 길 아래서는 조금 더 천천히 더보기
2.28 필요할 때 너는 내게 필요한 말과 글 생각과 마음을 턱턱 주고 가지 부곡 _ 황인찬 폐업한 온천에 몰래 들어간 적이 있어 물은 끊기고 불은 꺼지고 요괴들이 살 것 같은 곳이었어 센과 치히로에서 본 것처럼 너는 그렇게 말하고 눈을 감았다 도시에는 사람들이 살지 않았다 다들 어디론가 멀리 가버렸어 풀이 허리까지 올라온 공원 아이들이 있었던 세상 세상은 이제 영원히 조용하고 텅빈 것이다 앞으로는 이 고독을 견뎌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다 긴 터널을 지나 낡은 유원지를 빠져나오면 사람들이 많았다 너무 많았다 더보기
1.31 꾹꾹 눌러담아 놓은 마음들을 가볍게 말하고 나니 내가 가벼워졌다. 혹 나의 생각과 마음이 누군가에게 흘러 물들게 할 것 같아 그저 혼자 뒤척이던 밤도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네 오두막 하나를 만들면 좋겠다. 언제든 다녀가라고. 말하면 좋겠네. 더보기
12.31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이 주는 평온함에 기대어 살아가기를 빌 때가 있었다. 그런 내가 차곡차곡 쌓인다. 더보기
12.2 작은 네모 칸에 오늘 뭐 먹었는지 적어가며 견디던 시간을 지나. 기억하고 싶었던 일, 그저 반복되는 일들을 적으며 지나온 시간이 벌써 이만큼 텅 빈 내년의 달력, 기념일들을 생각하며 넘겨보다 1년이 고작 12페이지라니. 라는 생각을 한다. 나의 시간은 이제 빨라졌다. 푸른 여름을 지나던 마루의 찬 기운을 느끼며 느리게 흐러던 시간은 이제 내게 없다. “싫은 건 싫다고 표현하고 좋은 건 좋다고 말하는” 이라는 말을 오늘 일기장에 적는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