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영화에서 낡고 오래된 짐 가방이 열리듯 그렇게.
집에 가서 오래도록 갇혀 있던 박스를 풀었다.
텅. 하고 무언가 갇혀 있다 겨우 빠져나오는 것 같은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이토록 많은 시간과 사람과 기억들이 갇혀 있다니.
내 카메라를 가진지 6년. 그 동안 참 많은 것들을 찍어 모아 두었다. 기술이 뛰어나 멋진 사진은 아니더라도 포커스가 나가 엉뚱한 곳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도 그게 다 기억이고 추억이라서 고스란히 그 시간을 내 앞에 놓아주다니. 너무 신기해서 한동안 가만히 사진을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며칠 전 친구에게서 나에게 한번도 보여준 적 없는 내 사진을 받았다.
그날의 칼진 바람도. 어어붙은 두 볼도. 꽁꽁 언 발도
그리고 잊고 있던 나도 기억이 나서. 그 느낌이란..
친구와 사진 정리하겠다고 사진 책 표지를 만들다가 사진이라는 게 이렇게 설레일 수 있구나 했다.
나중에 이 사진 보면 내 생일 축하해주러 온 친구랑 깁스한 다리때문에 멀리도 못가고 동네 놀이터에서 놀았다는 걸 기억할 수 있을까. 사진 찍는 친구가 앞에서 하나 둘 셋 "오이시이"했던 것도 기억할 수 있을까.
우리가 스물 다섯을 이렇게 넘어갔다는 걸 기억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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