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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내 흰 바람벽,

저장 안 된 기억들


이젠 뭐든 저장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모든 게 사라져버린다. 그래서 저장해두고 잊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새벽이니까. 난 좀 센치하다.
다 지워져 버렸다. 지워졌는데도 뭐가 없어졌는지 몰라서 별로 아깝지 않다. 사실은 하나하나 더듬어 보면서 아! 하고 이마를 치기도 하고. 

작년 이맘 때쯤 컴퓨터를 박스에 싸서 치워버렸다. 뭔가 그래야할 것 같았다. 좀 잊고 싶었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으면 좋겠었고. 그보다 내가 누구도 찾지 않았으면 싶어서. 방안은 조용했고. 세달? 네 달만에 다시 꺼낸 컴퓨터는 그때 내 마음처럼 텅 비어 있었다. 아무것도 찾아낼 수없었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내 기억들마저 모두 지워줬다. 깨끗하게 처음의 상태로. 당시에는 그게 얼마나 큰 일인 줄 몰랐다. 지나고.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길에. 가만히 노래를 듣다가. 길을 걷다가.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보다가 문득문득 내가 저장해 놓은 많은 것이 지나갔다. 
이야기들. 어쩌면 많은 이야기들로 뻗어 갈 수 있었던 내 장면들. 일기들. 수 많은 사진들. 내가 받았던 많은 파일들. 그 속에 간혹의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들. 내가 자주 가던 좋아하는 그림. 글. 그리고 많은 것들이 있던 사이트들. 담아놓은 영상들. 내가 그래도 모아놓은 내가 걸어온 시간들.
가끔 친구와의 대화 끝에 그게 이제는 없어. 하고 생각나는 참 오래된 무엇들까지. 

어차피 없고. 없어도 살수는 있는데. 꽤 아쉽고. 아깝다는 생각에 숨을 몰아 깊이 쉴 때가 있다. 
사실은 아무리 기를 쓰고 모아봐야 언젠가는 필요없고. 사라져 버릴 것들이니까 더 소중하다 생각하기 전에 잘 사라져버린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며칠 전에 우연히 저장된 대화를 보다가 화가 나서 울었다. 겉도는 대화도 그렇고. 하고 싶은 말은 못하고 재미없이 돌려 말하는 나 때문에도 그랬다. 그리고 진짜 화가나고 눈물이 났던 건 너무 설레였던 내가 보였고. 절대 그 순간은 거짓일 수 없던 네 말이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것 때문이었다.

어떻게 변하지 않을 수가 있겠냐만. 지나면 너무 아무것도 아닌 것에. 그런 내 자신도. 보기 싫어진다. 어제는 문득 지나간 기억은 다. 더구나 나쁜 기억은 좀 빨리 그리고 새하얗게 지워졌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그리곤 또 그럼 또 다른 문제가 있을거야 하고. 어느쪽으로도 확신을 못했다.
나쁜 기억은 나 아닌 상대방만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가 상대방은 나쁜 기억이 아니면 끝이구나 싶었다. 나쁜 기억을 빨리 잊는 사람도 있다는데 나는 매번 눈을 감다가도 걷다가고 밥을 먹다가도 전화를 받다가도 머리를 감다가도 세수를 하다가도 생각이 나서 입을 삐죽이며 생각을 떨쳐 내려고 고개를 새차게 흔든다. 

사작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요즘 전화기를 들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싶어진다. 몇개 없는 전화 번호를 보다가 다시 닫고 다시 열고를 반복하다가 쓸쓸해진다.

아. 문자가 모두 지워졌다. 그게 시작인가보다. 내가 지운 기억은 없는데 문자 메시지가 사라졌다. 또 몇개의 기억이 사라졌다. 좀 슬프다. 내가 뭘 기억하지 못하는지 모르는 거. 그게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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