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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내 흰 바람벽,

10.31


그 바다는 내게 빠짐없이 일출을 보게 해주었지.
고작 이번을 더해 두번이지만.
다시 갈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이런 인연이 있을까 싶은 친구와 함께 일출을 보았다.
‘살다 보니’라는 말을 자주 떠올렸다.
끝까지 함께 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이는 떠났고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이와 만나 웃고 이야기하고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 만나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 한다.

10년 쯤 전에
새벽 4시에 일어나 텅빈 버스정류장에 앉아
싸우는 연인의 뒷모습을 보며 버스를 기다렸다.
그저 검은 풍경들 사이사이 가로등이 지나가고
여기가 어딘가 싶은 곳에 내려 한참 길을 올랐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지. 뭘 보고 싶은 거지.
이래서 내가 얻는 게 뭐지 하면서
바위가 맞닿은 작은 길을 지나
아직 어둔 절앞에서 떠오르는 해를 기다렸다.
기다리며 편지도 썼다.
“나는 지금 내 첫 일출을 기다리고 있어”하고
누구에게 전해졌는지 그것도 이젠 잊었지만
그 문장은 기억났다.

바다 끝은 너무 멀었고 떠오르는 해는 벅찼다.
너무 거대한 것들 앞에 놓여 흠짓 몸을 웅크렸다.
무서웠던 것 같다. 하지만 또 심장이 두근거리며 설렜다.

허무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잦았고 무기력했던 요즘
어제고 오늘이고 내일이고 뜨는 해지만
또 이렇게 이벤트처럼 내게 다가오기도 하니까
적당히 잘 살아봐야지.
사는 거 또 즐겁게 살아봐야지 싶었던 순간이었다.

10년 전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는데
그 답은 10년쯤 뒤에 안다.
그때 그 새벽의 바다를 보지 못했고
왜 여길 오르고 있나 생각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바다가 이렇게 확 내게 다가오지 못했겠지.

허무하기만 한 이 하루하루가
또 어느 날 내게 의미가 되어 다가오겠지.
착각도 하고 내 마음대로 의미도 가져다 붙이고
그냥 그렇게 사는 거니
나 행복한대로 나 좋은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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