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난 곳 찾아 쏟아 붓듯 비가 내리고. 그래도 몰아치는 빗소리가 좋아 괜히 창있는 곳에 가 서 있고
아침 걸어가는 저 길과 내가 신은 신발과 들고 있던 우산과 메고 있던 가방의 색이 좋아 기분이 좋다.
전화를 해야지. 누구든 목소리를 들어야지 하며 건 전화의 끝에 엄마가 있다.
엄마가 오겠다 하는 말이 떨어지자 마다 마음이 들떠 지나가는 누구든 붙잡고 "엄마가 온대요!"하고 말하고 싶어 혼났네. 글쎄 그렇더라니까. 괜히 히죽거리며 오늘 뭔가 기분이좋았어. 하고 끌어다 붙인다.
엄마. 나도 엄마 배에서 열달을 헤엄치고 살았지. 태어났을 때는 쪼글쪼글 그야말로 핏덩이었겠지. 엄마는 또 나를 덥석덥석 잡지도 못하고 왜 우는지 왜 웃는지 왜 짜증을 부리는지 모르고 어르고 달래면서 나를 키웠잖아. 근데 그게 다 낯선거야. 기억할 수 있는 어린시절엔 이미 걷고 말하고 있었으니까 그 이전에 나는 없는 것처럼. 나는 그런 시절없이 처음부터 걷고 말했던 것처럼 낯설어.
나도 배꼽이 떨어지고 열꽃이 피고 또 어디쯤에선 아프고 그랬을 텐데 내가 다겪은 일인데 그게 낯설다니.
배밀이를 하고. 뒤집기를 했을 때 엄마도 아빠도 세상 누구 부러울 것 없이 행복해 했을테고. 두다리 힘주어 혼자 걸었을 때 우리나라 축구가 4강에 올라갔을 때처럼 환호하며 나를 안아 주었겠지. 어버버버버 하다 엄마. 아빠 말했을 때는 어땠겠어. 이 조막만하던 아이가 고 작은 입으로 자신을 아빠라고 엄마라고 불러주다니 그게 세상 끝이라도 행복하다고 말하겠지.
그 시간을 너머 여기까지 왔는데 그 시간들이 낯설다니.
그리고 그렇던 내가 여기 이렇게 있다니.
낯설어서 요즘은 자주 설레는지 모른다. 뭔가 짜릿짜릿하다. 가끔 행복도 하다. 나를 낳아 기르는 동안 내 부모도 이런 마음으로 나를 보았겠지 하며 기억도 없는 그때를 생각한다.
[ 새해 그 날이 되면 나는 엄마의 일기를 읽었다. "선영아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어린이 날이면 "오늘은 맛있는 거 사 먹어라" 엄마가 없고 달력 빨간날이나 내게 특별한 날이 되면 엄마의 일기를 읽었다. 날마다 매일 내곁에 있는 것 같은 엄마를 보려고. 오늘을 알고 어제 적어놓은 식탁 위의 노란 종이 쪽지처럼 .
"선영아 생일 축하해. 언제나 널 사랑한다. 네가 있어 나는 어디에 있어도 행복하단다. "
내가 있어 어디서도 행복하다면 엄마는 지금 행복할까. 그래, 내가 있어 누군가 행복할 수 있구나.]
엄마가 오면 동네 산책을 해야지 아이스크림 하나씩 물고 내가 걷는 도시의 동네를 함께 걸어야지. 남산도 가서 엄마에게 구경 시켜주고 싶고 한강도 걷고 싶고 나도 어색한 이 도시를 엄마와 함께 어디든 가고 싶다고 어디로 가야할지 계속 생각하다. 어디면 어떨까 싶어 그냥 방에서 뒹굴러도 모두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왜 못해준 것만 생각이 나고 뭐든 좀 더 잘하고 싶고 다른 사람들처럼 좋은 거 많이 못해줘 난 왜 항상 미안하기만 하는지.
나 온다고 소고기국 끓여놓으라했다는 아빠 마음에 시린 발등 더 시리게 하지만 내가 잘할게 하고 눈 한번 질끈 감았다 뜬다.
많은 생각 지나가는 밤이지만 나 좀 설레는 밤이다. 비 내린 찬바람 부는 가을 같이 맑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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