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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내 흰 바람벽,

카페에서

여자가 말했다.

걷는 거 좋아해? 하고. 그게 시작이었다.

 

앞에 앉은 남자는 끄덕끄덕. 또 뭐가 있어? 하고 묻는데.

여자는 대사를 외운듯 줄줄이 풀어 냈다.

나는 영화 잘 안봐. 보고 싶은 것도 일부고.

노래는 네가 별로 안좋아하는.종류의 노래만 듣고.

가끔 진짜 한밤 중이나. 이른 아침에 전화할지도 몰라.

그러다 또 며칠을 연락이 없을지도 모르고.

어쩔 땐 어디든 가자고 불쑥 손을 잡아 끌거야.

그러다 혼자 어디든 갈지도 모르지.

말도 안되는 것들을 하자고. 못하겠다하면 왜 못하느냐고

너한테 실망했다고 말해도 넌 상처 안 받을자신 있어?

나는 너를 이해못해도. 나는 이해받고 싶어하는 날이 더 많을거야.

그래도. 너는 괜찮아?

 

얘기를 듣다가 저 여자가 나인가 싶었다.

 

여자에게로 가겠다는데. 좋아하고. 사랑하고. 이해도 하겠다는데.

여자는 선뜻 좋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렇게 나를 좋아해주겠다는 대도.

이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 많은 것을 이해해 주겠다는 대도.

나는 뭔가. 설레지 않는다고.

 

그리고 남자가 말했다. 그래도 좀 더. 기다려보겠다고 한다.

말없이 서로 마주보며 앉아 다른 많은 생각을 하는 저 허공의 눈빛들.

여자의 그 많은 물음은 적어도 그런 일엔 상처받기 싫단거겠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생각이 머리 위로 휘리릭.

나는 얼마만큼의 방어적 질문들을 가지고 있는지.

 

흠. 너무 많아.

그게 문제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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