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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내 흰 바람벽,

4.11


매해 집을 찾아오던 제비가 있었다. 그 새가 같은 새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내가 처음 본 제비의 자식의 자식의 자식의 자식쯤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우리의 봄은 늘 그 제비로부터 시작되었다.
봄이 왔는지. 이걸 봄이라 생각해도 되는지를 가늠할 때마다 처마를 쳐다보았다. 어디선가 째작거리는 제비 소리가 들리면 그래. 봄이구나. 하고 말하던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매해 같은 자리에 집을 지었고. 떠나고 난 자리를 정리하지 못하고 허물어진 터만 남아있을때는 보수를 하든 허물어트리곤 다시 짓든 늘 그 자리에 제비집이 있었다.

제비가 집을 짓기 시작하면 아빠도 어디서 나무 판 하나를 가지고 와 제비집 밑에 판을 덧대주었다. 늘 집을 짓던 자리 밑은 우리의 신발이 있었고. 제비의 똥이 그대로 퐁당 신발로 떨어지기 때문에 아빠의 봄맞이는 늘 그 화장실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그랬겠구나. 더듬어본다.

그럼 어느새 집이 완성되고 우리는 집안에 작은 집을 품은 두집 살림을 했다. 그 새가 새끼를 낳아 새끼들이 밥을 달라 짹짹거릴동안. 나도 밥을 받아먹으며 낮잠을 자며 꿈을 꾸며 자랐다. 그럼 어느새 그 새끼들이 날기 연습을 하는데. 그럼 또 전쟁이 시작된다.

날기가 한번에 되면 뭐가 걱정이겠냐만 떨어지기 일수고 떨어지면 어마어마한 크기의 고양이들의 표적이 되니 새끼들이 날기 연습을 하면 고양이들이 새를 잡아먹지 못하게 감시해주어야 했다.

작은 날개에 힘을 실을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느날은 내 신발에 떨어진 새끼 제비를 봤다. 아주 여리고 작은 날개였다. 털이 보송보송했다. 감히 덥석 잡을수도 없었다. 그럼 옆에서 어미가 그 새끼를 멀리서 쳐다보며 지적인다. 안타까울만큼.
아빠는 신발을 들어 그대로 집에 올려주었다. 그럼 또 날개에 힘을 주고 날아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렇게 아주 작아 날수 있을까했던 마지막 새끼까지 날개를 가누면 한 지붕 두집 살림은 끝이났다. 학교에서 오면 어느새 새집이 비어 있곤 했다. 매번 지나가는 일인데도 아침부터 시끄럽게 지적이던 소리가 사라지면 서운함이 들었다.

새들이 가고 남은 집정리는 늘 우리 몫이었는데. 엄마든 아빠도 새의 집을 허물고 덧댄 판자를 내리면서 이번 한 살림도 잘 살려보냈다고 했다.

하지만 여러해 동안 모두 그렇게 살림을 잘 내준 것은 아니었다. 어느 해는 한마리의 새끼도 살려내지 못한 해도 있었고. 어미인지 아비인지 혼자 새끼들을 데리고 떠난 적도 있었다. 기억하지 못하는 어느 해에는 집을 찾아오지 못한 적도 있었겠지.

아빠가 사람이 아니라도 잊지 않고 찾아주는 이가 있다는 게 신기하고 고마운 일이라고 한 말이 기억났다. 해는 붉게 산을 넘어가고. 나는 마루에 누워 숙제를 하다가 설핏 잠이 들랑말랑하고. 엄마는 빨래를 개고 아빠는 마당에 앉아 자전거를 닦고 있던 그 날이. 그리고 처마 밑에 제비들이 집을 짓고 있던 그 날이. 어렴풋이. 순간순간 또렷하게.

올해도 사람 없는 그 집에 제비는 날아들까. 봄은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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