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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내 흰 바람벽,

3.11



나는 조금 살이 올랐고. 이제 키는 자라지 않아.
아주 아름다운 시간은 오지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지나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초라했어.

이야기는 허무했고. 내 말은 의미가 없었고. 왜 그곳에 내가 있어야하고 왜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를 들어야하는지 나는 알고 있어. 혼자는 두려울테니까.
알고 있었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몇번은 더 한숨을 내 쉴 것을. 또 생각하겠지.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한다고.
후회 뿐이었어. 그럴바엔 사람을 만나지 않아야한다고 생각해.
맘껏 웃고 얘기했지만 거기에 진짜 나는 없다는 생각. 그런 생각이 든 후로 사람을 만나지 않았어.
2년동안 또 3년동안 그렇게 숨어버렸지. 궁금해하지 않는 것은 당연했고. 찾는 사람은 없었고. 나는 더 단단하게 숨어버렸지. 하지만 곧 괜찮은 척 아무 일도 없는 척.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척. 부족하지 않은 척 했지만 다 거짓말. 그런 게 어딨어.
아주 외로웠고. 괴로웠지.

어울리게 웃고. 어울리게 말하려고 노력하고 돌아온 날은 매번 발에 쇳덩어리를 차고 걷는 것처럼 무거워졌다. 하루를 시작하기 싫고.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제도 그랬고. 어디쯤부터라고. 나는 알지.

나의 선택이 옳았다고. 그래도 이 걸 견디며 이뤄놓은 것이 있다고 오늘 물에 담긴 그릇을 보며 생각했다.
문득.
텅텅 비었던 집에 하나하나 자기 자리를 잡고 있는 것들을 보면서.
굽은 등으로 책상에 앉은 엄마를 보면서.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 먹는 우리를 보면서.
예쁜 것을 보면 사고 싶다고 말하는 엄마를 보면서.
하나를 놓으면 하나가 들어차고.
내가 좀 외로우면 내 가족의 한쪽이 들어차겠지.

그래. 그랬다. 나는 더 꼭꼭 숨을거야.
갇힌 순간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도 이제는 안칠거야.
아직은 울지 말아야지. 더 꾹꾹 참아야지.

소란했던 마음은 여기에 두고 나는 이제 또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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