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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내 흰 바람벽,

철지난 사진들

 

 

 

 

 

 

 

 

시간 참 빠르다.

어느 시점으로부터 1년이 참 빠르다.

말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 보고싶은 사람도 참 많았는데,

지나고 나니까, 다 쓸데없다 싶다.

 

 

 

다시 봄이 왔다.         

 

                                         이성복

 

  비탈진 공터 언덕 위 푸른 풀이 덮이고 그 아래 웅덩이

옆 미루나무 세 그루 갈라진 밑동에도 푸른 싹이 돋았다

때로 늙은 나무도 젊고 싶은가보다

  기다리던 것이 오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누가

누구를 사랑하고 누가 누구의 목을 껴안 듯이 비틀었는가

나도 안다 돼지 목 따는 동네의 더디고 나른한 세월

  때로 우리는 묻는다 우리의 굽은 등에 푸른 싹이 돋을

까 묻고 또 묻지만 비계처럼 씹히는 달착지근한 혀, 항시

우리들 삶은 낡은 유리창에 흔들리는 먼지 낀 풍경 같은

것이었다

  흔들리며 보채며 얼핏 잠들기도 하고 그 잠에서 깨일

땐 솟아오르고 싶었다 세차장 고무호스의 길길이 날뛰는

물줄기처럼 갈기갈기 찢어지며 아우성치며 울고불고 머

리칼 쥐어뜯고 몸부림치면서......

  그런 일은 없었다 돼지 목 따는 동네의 더디고 나른한

세월, 풀잎 아래 엎드려 숨죽이며 가슴엔 윤기 나는 石炭

層이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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