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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내 흰 바람벽,

그때 왜 사라져버렸어?

 

 

나를 봤다고 하는 그의 얼굴을 보는데, 해야할 말이 없었다.

그때. 왜. 나를 모른 채 했어. 하고 물어도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다 멈춰섰는데, 발걸음이 움직이질 않아 몇시간이었는지, 몇분이었는지 그 길목에 서 있었다.

그 때의 나를 지금의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어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몰랐다.

 

너는 그때 우리가 만나기로 한 2번출구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나오고 있었다.

얼핏 네가 보였는데. 그 때 너도 나를 본 것일까.

다시 네 얼굴이 나타났을 때 나는 이미 발걸음을 돌려 뛰고 있었다.

너를 위해 준비한 케익을 손에 들고서.

아침부터 네 생일이라고 준비한 케익인데, 하면서도 그런 것 따윈 상관이 없었다.

추운 겨울이었고, 미끄러운 길이었다.

그 때 나 검정 코트에 짙은 남색 목도리를 매고 있었는데, 네가 말했다.

 

"너, 검정 코트를 입고 있었어. 목도리도 하고. "

 

그래, 네가 본 게 나임이 틀림없었다. 나를 찾았었구나.

 

"큰길에서 작은 도로로 빠르게 빠져 나갔어. 네가 아니면 내가 매일 기다리던 그 자리에서 네가 갑자기 뛰어갔어.

마을 버스에서 사람들이 내리고, 지하철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엉키는 바람에 너를 잃어버렸어. 그때는 잃었다고 생각 못했는데. 잊은 게 있으려니 싶어 기다렸어. 전화도 했었어"

 

그래 그 전화. 우두커니 건널목에 서서 오는 전화를 확인만하고 받지 않았지. 나중에는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오면 만지작거리기만 했어. 실은 나도 그때의 나에게 묻고 싶어 그때 너 왜그랬냐고, 내가 가지 않으면 언제까지 기다릴 사람이란 걸 알면서 왜 가지 않았느냐고.

 

"매일 걷던 그 길로 너를 찾아도 가봤어. 집 앞에서 기다리다 길이 엇갈릴까 다시 2번출구 앞에서 기다렸어"

 

그때 난 우리가 매일 지나던 건널목이 아니라 그 다음 불록에 서 있었다. 큰 우체통이 있던 거기에. 그가 우체통에 사람도 들어가겠다고 했던 그 교동집 앞 우체통 옆에.

나중엔 그 우체통 옆에 쭈그리고 앉아 버렸다. 발이 얼음 같아져서 이윽코 터져버릴 것처럼 따가웠는데, 모든 기억을 지운 사람처럼. 그자리에 앉아만 있었다. 나중에야 식당 아주머니가 괜찮아 학생? 하고, 무슨일이냐고 묻지 않았다면 그자리에 얼어버릴 뻔 했다.

그제야 겨우 걷기 시작했다. 그 시간이 몇시였더라.

그렇게 헤어져 이렇게 오랜시간 후에야 만나게 될 줄 알았다면 나는 그때라도 너를 찾아갔을런지.

 

"그때. 너도 목도리를 하고 있었지. 검은색 코트를 입고, ... 미안해. 그때 많이 추웠지?

 그땐 그냥 그랬어. 마음에 어떤 불이 집혀지고 있었어. 그래서 불 같은 마음을 달고 사는 사람이었지. 어쩌다가 하필 그때 불이 일었는지. 숨고 싶었어. 어서 그 자리를 떠나고 싶었어."

 

나도 주체하지 못한 것들, 지금도 이렇게 미안해. 라고 밖에 못하는 그 마음을, 너는 조금이라도 이해해줄런지.

 

그렇게 도망쳐버린 나를 찾아주었으면 좋겠다고.

해가지고, 얼어버린 발과 손을 겨우 움직여 걸을 때쯤에 생각했어. 나를, 찾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내가 숨고선 내가 도망쳐 버리고선, 네가 나를 꼭 찾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많은 사람 중에, 결국엔 이 사람이었으면 했던 너에게조차 말할 수 없던 마음을 이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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