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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내 흰 바람벽,

전화



전화 한통을 받았다.
처음부터 알수없는 긴 전화 번호라 받지 말까하다가 받았는데.

아무말이 없다.
여보세요. 하고 세번을 더 말하고 나니 
저편에서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내가 짐작할 수 있는 사람인가 싶어 귀를 더 바짝 댄다.

여기로와.

그렇게 망설인 틈에야 꺼낸 말이 그리로 오라니, 네? 하고 말하는데.

여기로 오라고. 

전화를 잘못걸었다고 말하려는데. 전화를 까지 말했는데 

내가 여기 있잖아. 하고 말한다.

끊으려다 좀 더 들고 있는 전화기 뒤로 여기와는 다른 언어가 들린다. 

전화를 잘못 거신 것 같다고 말하니까. 그쪽 수화기를 만지작 거린다.

언제 번호를 바꿨냐고 묻는다.
언제였지 생각하는 틈에 또 알수 없는 그쪽의 말들이 들린다.

오래됐는데. 사년은 됐는데. 라고 말하니 또 거기선 말이 없다. 

죄송하다 말하면서 또 그쪽은 전화를 놓지 않는다. 
그럼 나도 놓지 못한다.

내가 아는 사람인가 싶어 더듬어보는데 나를 기다릴 사람은 없다.
내가 떠나온 사람은 없는데.

물어볼 수도 없어서 나도 망설인다. 
거기서 다음 말을 할 때까지 혹은 전화기를 놓을 때까지.

이메일은 몇달전까지 주고 받아서 전화번호가 바뀐지는 몰랐다고.
그러니까 전화를.한 건 사년전이 마지막이라고 
여긴 인도네시아고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고. 

그리고 몇개의 그녀와 그의 정보를 남기고 

미안하다고 전활 끊었다.

3분 45초의 통화 시간동안 그와 그녀의 사랑이 나를 지나간 것 같다.

전화번호 한자리를 잘못눌렀을지도 모르고
전혀 다른 사람의 번호를 기억하고 있는걸지도 모르고
또 누구였어도 상관없을 전화였겠다.

정말 지나면 그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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