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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내 흰 바람벽,

6월 7일

나는 아빠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걸까.

문득 든 생각이었다. 달리는 택시 안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앉아 있다가 든 생각이었다. 어쩌면 병원 대기실에서 사람들을 보다가 든 생각일지 모른다. 나는 아빠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 걸까.

말 오가는 일 별로 없고, 눈 마주치는 일 별로 없는 사람을 어느 순간 나는 이해한다고 말했다.
엄마가 길을 걷다가 말했다. 아빠가 태어난 곳을 떠나고 싶다 한다고, 어디 괜찮은 곳이 없냐고 물었다. 엄마는 그런 아빠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했지만 나는 그랬다. '난 이해해'
평생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었는데, 내가 먼저 아빠를 이해한다고 말하다니, 그 순간 나도 얼만큼은 놀랐겠지.
내가 그 곳을 떠나온 이유와 아빠가 떠나고 싶어하는 이유는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빠가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가라고 말했지만 그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닐거라고. 사람 하나 뿌리 내리고 산 곳을 쉽게 박차고 나올 수 있을까. 그 마음 먹기 나도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했는데, 하지만 순간이라고. 떠나고 싶은 곳이 있다면 그건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니, 어디든 마음둘 곳 있다면 멀리로, 떠나라고.

그래도, 나는 아빠를 다는 이해 못하고 있겠지. 떠나려는 마음이 나하고는 또 다르겠지. 그래, 어쩌면 반도 이해못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어디 사람 마음을 쉽게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릴 적, 짧은 순간 순간의 기억 속에 우리는 평상에 모기장을 치고 누워있었다. 옆에는 먹다 남은 수박이 있었고, 그래서 손끝이 좀 찐득했는지도 모른다. 바람이 좀 서늘하게 부는 초여름이었을 것이다. 엄마가 물었다. 너는 크면 어디에서 살고 싶냐고, 나는 그때도 바다에서 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산으로 둘러쌓인 곳은 이만큼이면 되었고, 바다 보이는 곳에 살고 싶다고. 그 말을 듣고 아빠가 그랬다.나 때문이라도 바다가 보이는 곳에 집을 짓고, 창문도 바다 쪽으로 크게 내어 살아야겠다고.

어떤 의미로 나는 아빠를 참 많이 닮았구나. 그래도 어디까지는 아빠를 이해하고 있구나. 그것만으로 참 다행이다.

그리고. 지금 이 곳을 떠나고 싶다면 행복하지 않은 거라는 말에 나는 내심 동의하고 있지만 내 다음 곳을 위한 지금이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니니까.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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