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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내 흰 바람벽,

11.9



오랜만에 시골집
저 나무가 삼백년 정도 됐다그랬나.
노오란 은행잎 가득이길래 멀리서 한번 찍어봤다.

저 나무에 나도 조금은 담겨있다는 거.
말을 하지 못해도 어떤 감정을 표현하지는 못해도
나무나 식물에게도 우리와는 다르지만 기억저장소가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내가보지 못한 내 할아버지도 저 나무는 알고 있을 것 같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내 어린 시절도 알것 같고.

온통 노랗고 붉고 그래서 마음이 왈랑왈랑거려서
엄마가 가지런히 모아둔 은행잎을 보면서
눈 속으로 햇볕이 전과는 달라서
내 마음 그랬을거라고 생각해본다.

괜히 가을에 아파가지고 더더 외롭고 서럽나보다.
내 나이에도 이젠 퇴행성이 붙기도 하고
혼자서 내 아픈 건 내가 잘 관리해야하고
이것저것 내가 해결해 나가야 하는 일이 생길수록
내 나이 벌써 여기인가 싶다.

아주 어른 이라고 생각했던 나이쯤이 아니던가.
"살다보면" 이라는 말 써도 될만큼 살긴 살았나 보다 하는 친구의 말을 들으며 지난 날을 가늠해보기도 하고.


꿈을 꾸었어.
니가 결혼을 한다고.
그 소식 듣고 펑펑 울었어.
쭈그리고 돌아앉아 펑펑 울었어.
일어나보니 얼마나 슬펐던지 진짜 눈물이 말라 있더라.
펑펑 울면서도 생각했어.
잘 살아. 잘 지내. 나한테 잘해줘서 고마웠어.
행복해. 꼭.꼭.
우는 건 그냥 너를 그리워할 내 마음이
이젠 더 이상 어딘가로 전해 질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래서 그래.
그런 마음을 가지면 죄를 짓는 것 같아서.

한번도 말한 적 없고 전해진 적 없고 전해지지 않을거지만
일어나서 누군가 멀리 있다. 볼 수 없다 생각하니
또 아침부터 입술부터 나오더라.

가을이라 그런가.
떨어지는 낙엽이 죽어가는 거라 생각했다면
나는 가을을 사랑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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