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든 갈 수 있기 때문에 어디로도 갈 수 없다.
엄마의 신발끈을 묶어주고 옷도 다듬어주고.
웬일로 엄마 귀를 다 파주냐고 하면서 머리를 기대고.
벽이 쩍쩍 갈라지는 소리.
나는 아무대도 갈 수 없어.
서로의 역할이 바뀌고 있다는 생각. 그 생각 끝에 있는 또 다른 많은 생각들.
잊지 말라고.
눈 내리는 소리. 이제 여기서는 들을 수 없지만.
언젠가 들었던 그 새벽에 눈 쌓이는 소리.
나는 알고 있어. 아무도 곁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그저 눈 내리는 기척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 싶던. 어디로든 던져버리고 싶었던 불 같은 가을은 갔고.
또 겨울 찬바람 앞에 섰다.